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가 보인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무리로 다니던 친구들 대여섯명이 어쩌다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당시 그 무리에 속하지 않았던 나는 내 방에서 그 친구들과 어색하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엄마가 그 모습이 신경 쓰이셨는지 나에게 과자 심부름을 시키셨다.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잘 놀고 있는데 괜히 참견하는 엄마가 짜증 났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무리에 잘 속하지 못했고 어정쩡하게 무리에 끼려고 애쓰던 나를 엄마가 구제 아닌 구제(?)를 해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가 생각난 걸 보면 당시 나름대로 상처도 되었고 자존심도 꽤나 상했던 것 같다. 당시엔 괜히 엄마가 원망스럽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들 사이에 속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있던 딸을 보는 엄마 마음이 어땠을 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니 알겠다

얼마 전 아이가 물놀이장에서 놀다가 유치원 친구 둘을 만났다. 유치원 친구 2명이 애초에 조금 친했던지 서로 놀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 친구들 사이에서 내 딸이 속도 없이 친한 척 하면서 같이 놀려고 애쓰는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내 상처가 드러나면서 감정이입이 되었다. 아이 앞에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이 상했다. 혹여 아이도 나처럼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 될 까봐 더더욱 아이 앞에선 쿨한척 하고 별거 아닌 척 했다. 하지만 속은 쓰렸다.

 

우리 엄마도 어릴 적 나를 보며 이렇게 속이 상하셨을까? 이제야 엄마 마음이 이해가 간다. 친구들 무리에서 은근히 왕따를 당하는 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애들 사이에 껴야 했던 엄마 마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새록새록 어릴 적 내 모습이 투영된다. 더불어 엄마가 더욱 생각나고 엄마의 모습들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는 그 순간부터, 아니 임신 한 그 순간부터 ‘우리 엄마도 날 이렇게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따라다녔다. 나도 엄마가 되려고 보니 더더욱 엄마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입덧이 꽤 있는 편이었다. 퇴근 후 버스를 내릴 때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몇 번 토를 하였고 나중엔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닐 지경이었다. 출산 할 때 아이를 낳는 과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를 낳자 마자 쌩으로 절개 했던 회음부를 꼬맬 때 그 고통은 지금도 잊혀 지질 않는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한번도 잠을 쭉 자본 적이 없다. 원래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을 자고, 매일 11시면 잠이 들고 일찍 일어나서 나름 아침형 인간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새벽에 깨는 아이를 재우고 자다 보니 패턴이 엉망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새벽에 자주 깨고 잠도 잘 못 들었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우리 엄마는 지금도 새벽에 깨신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에 잠도 잘 못 주무신다. 애를 낳기 전에는 단순히 엄마 체질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 닮아서 잠을 잘 자나 보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가 잠을 잘 못 들고 깊이 못 자는 이유가 바로 나를 키우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중고등학교 때도 노느라 밤 늦게 들어왔고, 친구 집에서도 자주 잤다. 대학생이 됐을 때도 새벽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는데, 아무리 내 나름 성인이었어도 엄마 입장에서는 어린 딸이 저녁 늦게 안 들어오면 걱정되기 마련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새삼스래 쇼파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는 얼마나 딸이 걱정 되셨을까. 피곤하던 와중에도 딸을 기다리는 애타고 걱정되는 심정을 이제야 알겠다. 향후 내 모습이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동시에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도 한때는 소녀였다

예전에 이모 할머니께서 우리 엄마 어린 시절을 잠깐 들려 주신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우리 엄마는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삼촌들이 예쁜 얼굴 좀 보자고 놀리면 절대 창문에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바퀴벌레도 잘 잡는 우리 엄마는 어릴 적 수줍음이 많던 소녀였다.

 

고등학교 시절엔 배구부 선수였던 우리 엄마는 지금은 꽃무늬 옷을 입고 파마 머리를 한 그런 아줌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을 처음으로 들었는을 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리 엄마에게도 그런 소녀 시절이 있었다니… 강인한 엄마로만 생각되던 우리 엄마도 한때는 수줍음 많던 소녀였구나..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가 보인다

엄마가 되고 보니 새삼 엄마가 보인다. 나를 키우느라 애쓰셨을 우리 엄마의 희생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밥을 빨리 먹어? 하면서 엄마에게 무안을 주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보니 나도 어느새 틈이 날 때 빨리 밥을 먹고 아이를 챙기고 있다. 점점 나도 엄마처럼 변해간다.

 

새벽에 자주 깨고, 밥도 빨리 먹고, 옷도 대충 입는다. 어릴 적엔 이런 엄마의 모습이 창피하고 싫었다. 그런데 점점 나도 그렇게 되고 있다.

 

요새 엄마들은 안 그런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되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다.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엄마의 희생이 보인다. 아이를 낳기 전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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